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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웹진

Vol.11_LibraryRelayTalk_채희동 의과대학장

2020-03-24 조회 80
작성자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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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앞을 지나다 잠시 시선이 멈춘다. 화강석 외벽의 도서관은 차도남같이 다가온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느긋한 포즈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컴퓨터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사람들, 혹은 과제 수행 중인지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고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이 클로즈업되어 보인다. 차가운 거리감 너머에는 따뜻함과 활기가 조용히 흐르고 있다.
 
마치 오래된 시네마스코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의과대학 다닐 때, 그리고 전공의 시절에 드나 들던 도서관을 떠 올려 본다. 당시 도서관과 의대 강의실은 내부에서 이동이 가능했으나 등을 맞대고 있는 구조여서 마치 도서관이 단독 건물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내부에서 이동이 가능하다 보니 학생들은 자연스레 도서관 정문으로 등하교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서관으로 등교하여 열람실 책상에 공부할 자리를 잡고 강의실로 이동하여 강의를 듣거나, 실습실이나 병원으로 이동하여 실습을 마친 후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서 도서관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도서관이 닫는 10시까지 공부하다 하교하는 일상이었다. 사실상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 도서관이었다. 아니, 시간을 보냈다기 보다는 도서관에서 살았다 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당시 빽빽하게 책이 채워진 서가가 열람실 책상 바로 옆에 있었으나 열람실을 공부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하루를 지낼 아지트를 잡고 공부하다가 강의실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였다. 가끔 친구 자리를 맡아 주다가 일찍 왔으나 자리를 못 잡은 사람들과 시비가 있기도 했고,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공부할 자리 한 개와 남들이 공부하지 못하도록 서너 개 자리를 맡아 놓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날은 수모를 감수하면서 주인이 오면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옮겨 다니는 속칭 "메뚜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여름이면 당시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엎드려 자고 일어나면 흥건한 땀으로 노트가 젖어 필기한 잉크가 번지는 낭패도 있었다. 저녁 식사 후 도서관 입구에서 자판기 커피 한잔 하면서 옹기종기 앉아 있다가 공부하러 들어가는 다른 친구들을 못 들어가게 막는 "도서관 수비대"라는 별명이 생긴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내가 그 수비대였다고는 굳이 시인하지는 않겠다…). 공부하던 중간중간 도서관 앞으로 나가서 잡담을 하다가 내친김에 그 날의 공부를 호기롭게 포기하고 학교 앞으로 맥주 한잔 하러 가는 날도 왕왕 있었다. 도서관의 진정한 기능이나 역할, 그런 것을 떠나서 나에게 도서관은 그런 학생 시절의 아련한 추억만을 떠올리게 한다.
 
실은, 평생의 반쪽을 만난 곳도 도서관이었으니 나에게는 추억 이상, 운명 같은 곳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 의대 도서관이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의대생이었지만 캠퍼스를 같이 쓰던 치대생들이 그들의 시험 때면 나타나기도 했었는데, 못 보던 여학생들이 많이 나타난 어느 날, 정말 운명을 만났다. 나는 내 자리가 있었음에도 눈에 띄는 한 여학생의 옆자리에 가서 자리를 임시로 잡았고 공부는 뒷전인 채 어떻게 하면 이 여학생의 관심을 끌어볼까 노력한 끝에, 쉬러 나가는 듯한 그 여학생을 괜히 따라나가 앞에서 얼쩡거리기를 몇 번, 결국 집에 가는 "그 여학생에게 말걸기"에 성공하고, 친구들의 응원을 업고 만남을 계속하여 몇 년의 열애 끝에 지금 그 여학생과는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다.
 
도서관에서의 나의 추억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가보자.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도서관은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기능과 역할이 얼마나 다양해지고 방대해 졌는지, 실로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맞다 하겠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여 정보가 힘이 되고 인공 지능이 상용화되고 있는 지금,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어렵게 겨우 구할 수 있었던 해외 논문이나 자료들을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전차책과 전자 저널 수만 종이 우리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 있다. 의학 분야외에도 우리 도서관은 다양한 책과 자료를 구비하여 학문적 욕구, 혹은 특별한 관심이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뿐 만 아니라, 폭넓은 질문과 요청들에 대해서도 답할 수 있도록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물론 나는 이중 빙산의 일각만 이용하고 있으니 문제라고 생각은 하지만 옛날 사람이 다 되어서 그런 거라고 치부하며 이해 받고 싶다..

다만, 하버드대학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는 천정 높은 Widener Library처럼 우리도 울산의대와 서울아산병원 브랜드에 맞는 화끈한(?) 도서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세월이 흘러 그 역할과 기능뿐만 아니라 울산의대 하면 바로 떠오르는 도서관의 모습, 그래서 울산의대나 서울아산병원에 연수 온 학생들이나 해외 의사들의 추억으로 남고, 그들이 돌아가서 연구보고서를 발표할 때 등장하는 압도적인 한 장의 사진이 되면 어떨까?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그런 도서관....

"여러 교수님들과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열과 성을 다하시는 도서관의 모든 직원 분들에게 큰 감사를 표하며 도서관에 대한 단상(斷想)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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